Bonne Idée 일상 독서 영화 기록

아이유, 박효신, 그리고 nct... 라는 밈이 있다. 내 경우에는 박경리, 박완서, 그리고 코니 윌리스...로 바꾸어 쓸 수 있겠다.

 

나는 코니 윌리스를 좋아한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냥 이 작가가 인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좋다. 책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좋기도 하고. 온갖 물리 이론과 바꿀 수 없는 비극이 뒤죽박죽 된 상황에서도 그걸 뛰어넘는 애정이 좋다. 작가가 쓴 모든 글을 읽진 않았지만 적어도 여태 읽은 책들은 다 좋았다.

 

크로스토크는 '지금까지 읽었던 건 다 좋았어'의 룰을 깨는 첫 번째 책이다.

일단 배경이 '현대'다. 물론 단편 중에 '현대... 인 건가?'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갖가지 물리 법칙이 꼬이거나 역사의 현장에 떨어진다. 그리고 학회 모임, 대학, 연구원, 교수, 조교, 원생이 잔뜩 나온다(너무나 아늑하다). 그런데 이 크로스토크는 현대 실리콘밸리 IT기업 종사자들이 주인공이다. 여기서 난 책의 출판연도를 확인했다. 국내 출판은 2017년도에 이루어졌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읽는다. 집중이 되질 않는다....

 

난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한다. 왜냐하면 작가가 묘사하고싶은 현장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내가 자꾸 재고 따지게 되기 때문인데. 나도 이러고싶지 않은데 자꾸 머리가 알아서 진행하는 탓에....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이 소설도 서가에서 발견한 뒤 대출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어쩌면 내 본능이 미리 알아챘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번 뽑았으니 다 읽긴 읽을 거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괴로울 미래를 미리 예지한 건 아닌지...

 

작중 배경은 애플이 신제품 발표를 하기 전 어느 날인데, 스마트폰은 이미 보급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고, 노키아와 그 외 기타등등 휴대폰 제조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대이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주인공의 회사는 이번에 애플한테 밀리면 존속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매일 임원들이 비밀 회의를 줄담배 태우듯이 하는 상태. 이 상황에서 애플의 독주(삼성 이야기도 나오긴 한다)를 막기 위해 (주인공만 인정하지만) 사내 최고의 브레인이 내놓은 새로운 기능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여러명과 동시에 '문자'와 '통화' 또는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는 기능이다. 난 이부분을 읽고 다시 출판년도를 확인하고 역자후기에서 연도를 확인했다. 미국과 한국 동시 출판이란다. 눈물이 났다.

 

나는 어린 학생일때 피쳐 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변화를 겪은 세대라, 스마트폰 등장 이후 어느 때 즈음에 마이피플, 미투데이, 텔레그램, 카카오톡이 나왔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싶은 거냐면 초반에 이미 저 생각이 들어서 읽는 내내 너무 괴로웠다.

 

그 이후를 얘기해보자면, 뭐... 작가 특유의 절대 해결될 거 같지 않을 일들이 연달아 터지고 이제 끝난 건가 싶을 때 더한 걸 던져주는 전개 방법은 여전했다. 이런 류의 답답함은 내가 즐겨서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만 악당이 너무 전형적이라서 이 부분이 좀 아쉬웠다. 생각이 밀려올때마다 엄청 고통스러워하는데 정작 공감해야하는 나는 읽으면서 그렇게 힘들어보이지 않아서 '나약하도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돌고 돌아 행복해져서 그냥 거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아 맞다. 작가가 애서가에 다독가인건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래서 그런가? 이번 책은 헌사도 그렇고, 공공 도서관에 대한 감사와 경애, 그리움같은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에 특히 공을 들인 거 같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가장 웃겼던 점을 꼽아보자면... 칠순에서 팔순 넘어가는 작가가 생각하기에도 괜찮은 남편감은 머리 좋고, 다정하고, 밥벌어 먹고 살 능력은 있지만, 친구 없고, 모임 없고, 취미 없는 고아라는 게 너무 웃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