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ne Idée 일상 독서 영화 기록

의식의 흐름대로 씀

스포일러 주의

 

 

조조로 보겠다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영하 6도를 뚫고 영화관에 갔다...

5시 반 쯤 일어나서 '아 지금이라도 표 취소하고 다른 날에 볼까' 백만 번 쯤 고민하다가 그냥 출발했고

혹시 영화 시간에 늦을까봐 아직 해도 안 뜬 새벽에 달리기까지 했는데 그러면서 문득

'이렇게 고생해서 영화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없음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왜나면 지금까지 프랑스 영화는 감독 성별 나이 무관 유구하게 취향이 아니었기때문인데

다행히 걱정이 무색하게도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너무 잘 만들어진 내 취향 영화라 정말 행복했다... 보러오길 잘 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연휴 낀 주말 조조+아트하우스 영화라 관에 사람이 정말 없었고 보아하니 각자 자기가 제일 선호하는 좌석들로 예매한 듯 했다. 나도 그랬고ㅋㅋㅋ 쓰레기같은 단차지만 내 앞이 뻥 뚤려있었기에 행복하게 볼 수 있었다.

 


 

 

1. 영화는 사뮈엘과 산드라 각각의 어린시절, 연애, 결혼 초기 사진이 시간 순으로 나열하면서 시작한다. 음악은 알베니쯔 스페인 모음곡을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게 흘러나오는데, 어딘가 어설프고 거칠고 실수도 잦고... 나쁘게 말하면 엉망이고 날것이다. 그래서 보통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사진 연대를 보았을 때 드는 사랑스러움이나 아늑함, 포근함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이 사람들이 크고, 만나, 아이를 낳고 어설프고 안 맞는 연주처럼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면 문제의 첫 장면으로 화면이 전환된다.

 

 

2. 일단 첫 장면인 대학원생과 산드라의 인터뷰 씬에 관해 말하자면... 이때는 약간 후회됐다. 왜냐하면 사뮈엘이 튼 음악이 진짜 내 취향이 아니어서ㅜ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음악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건 아주 불길한 신호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찾아보니 다들 이 음악이 너무 좋아서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따로 찾아 들을 정도였다는데 내 귀에는 너무 예스러워서... 아무튼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랬나?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대학원생을 앞에 두고 산드라가 겪어야 하는 이 상황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그러면서 사뮈엘에게 어쩔 수 없이 화가나는 감정이 너무 잘 이해됐다. 오늘 집에 누군가 산드라를 인터뷰하러 온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저 음악을 쩌렁쩌렁하게 틀어서 자기 심사 뒤틀렸다는 걸 알려야하는 남자랑 같이 사는데 그걸 생판 처음 보는, 그것도 자기를 '작가로서' 존중하고 진지하게 인터뷰하려고 했던 상대한테 까발려지는 순간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다가왔다. 뒤에 나오는 재판에서 '산드라가 양성애자고 동성과 외도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이 인터뷰에서도 대학원생한테 추파를 던진 거다'라고 검사가 주장하는데. 나는... 그런 기미를 전혀 못 느꼈다. 산드라가 양성애자라는 걸 알고 다시 생각해봐도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지금 후기를 쓰는 순간에도 말이다. 나는... 아 내가 너무 원생 입장에서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는데, 그냥 산드라가 대답을 회피하고 편하게 앉아서 와인을 홀짝거리고 사적인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려고 하는 건, 상급자가 하급자한테 '나는 여유롭고 열려있는 사람이야'라는 인식을 강요하는 상황으로 느껴졌다. 원생이 원하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상급자가 스스로 원하는 이미지에 맞추어 줄 수밖에 없는... 어딘가 익숙한 그런 상황 말이다ㅜ 그래서 검사가 이해가 안 됐다. 검사도 사회생활 하다보면 상대가 원하는 대답은 안 하고 당장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 이미지에 취해 딴소리만 하는 상급자들을 자주 만나보았을 텐데 이번엔 그 상급자가 양성애자 여자라고 하니까 대입이 안 된 느낌... 하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보면 할 말이 많아지는 영화... 너무 좋다.

 

 

3. 산드라는 리뷰를 보니 호불호가 꽤 갈리는 캐릭터라 신기했다. 나는 영화 내내 산드라에게 공감하고 이입했는데,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보면 산드라가 주변에 두기 싫은 유형이라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들으니 정말 그런가싶기도 하고... 내 성격이 이상한 건가 싶어 갑자기 자아성찰을 하게 됐다; 보통 산드라를 싫어하는 관람객들은 불호 이유로 사뮈엘과 다투는 장면을 많이 꼽던데 나는 그 장면에서조차 산드라가 피해자라고 느꼈고, 그 장면이 끝나고 난 뒤에도 극 중 상황, 그러니까 사뮈엘이 남편이고, 그런 남자와 결혼 생활을 해왔고, 그 남자가 죽어서도 법정 앞에서 서야하는 현실에서 산드라가 피해자처럼 보였다. 사뮈엘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끝까지 산드라에게 도움이 안 되는 구나... 심지어 자기 자식인 다니엘에게마저도 살아서는 눈을 멀게 하고 죽어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뮈엘이 살아서 남긴 실명이라는 상처와 죽어서 남긴 부모의 사생활을 11살~12살 이라는 나이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까발려지는 상처를 수습하는 건 오롯이 산드라의 몫이었고 몫이 될 것이다. 나는 이게 후반에 다니엘이 한 선택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니엘이 얼마나 영리한 아이인데 이걸 눈치 못 챘을 리가 없다... 어느날 사고로 앞이 안 보이게 된 자식이 있는데 그 애가 나고자란 런던을 냅다 떠나 영국 다른 지역도 아니고 프랑스... 그것도 알프스 보이는 눈 덮인 산골짜기, 위험한 계단이 잔뜩 있고 보수 공사 중인 오두막에서 살게 하더니 다니엘을 돌보느라 '진짜' 자기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백날 우는 소리 까지 하곤 자살시도도 했던 아버지보다는, 다니엘과 같이 피아노 연주를 하고, 산책 나갈 때마다 지켜봐주고 쪽잠을 자더라도 양육과 맡을 일을 군말 없이 해내고 가계까지 책임지는 산드라를 선택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산드라는 하고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서 글을 쓰는 속도가 내 머리를 못 따라가는데... 하 아무튼 너무너무 좋았다. 배우 연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정말 완벽 그 자체였다. 독일인 여자가 프랑스 법정에서 프랑스 어로 심문받는...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할지 감도 안 오는 상황에서 인물 그 자체가 되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연기를 했다. 

다니엘에 관해 진술하는 장면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냥 주변에서 많이 듣던 '우리 아이는 어려움이 있지만 좀 다른 것 뿐이다. 특별한 거 뿐이다.'하는 표현이 아니어서 그랬나? 저 특별하다는 표현이 나는... 좋은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세하게 쓸 순 없지만 학부 때 아르바이트나 봉사를 하면서 저런 이야기와 비슷한 케이스를 자주 보았다. 적절한 환경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주양육자의 가치관이나 태도에서 비롯한 문제인 경우가 잦았다... 그때마다 든 생각이 부모의 정신승리를 위해 가뜩이나 힘들 아이의 삶이, 부모가 원하는 모양으로 번지르르하게 포장되기 위해 다른 방식의 고통으로 점철되는 게 맞는 건가하는 거였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했고.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지금 영화를 본지 며칠이나 지나서 대사가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다니엘은 피아노도 연주하고, SNS도 하고 호기심도 많은 그냥 그 나잇대 아이일 뿐이라는 몇 줄의 대사만으로 산드라가 다니엘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그리고 아이를 애정하는 만큼 환상에 젖어 현실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절절하게 느껴졌다.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긴 아들의 미래를 누구보다 고민하고 사랑한 엄마 그 자체였다... 대사 사이사이에 머리 좋고 이성적인 산드라가 사고로 시력을 잃은 아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할지 그리고 그걸 위해선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했던 (눈물로 가득했을 게 분명한)번민의 밤이 눈 앞에 보여 가슴이 아팠다. 이 생각을 구체화해서 정리하고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기까지 혼자 얼마나 고민하고 또 생각했을까? 진짜 화나는게 이 시간들에 사뮈엘이 함께했을 리가 없다는 거다... 보면서 이 장면에선 눈물이 찔끔 났다. 난 원래 눈물 없는 사람인데 이게 다 휠러가 연기 천재여서 그럼ㅜ... 

 

 

4. 사뮈엘... 법정에서 변호사와 각종 증인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만큼 그의 삶이 '특별히'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성별을 비틀면 너무 흔해 빠져서 아무리 떠들어도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이야기인데 사뮈엘이 떠들어대니 '특별한' 불행이 되어버렸다. 사뮈엘은 자기 자신의 '특별한' 불행에 취해 주변이 어떻게 불행해지는지 보지도 못 하는 한심한 어른일 뿐인데. 사뮈엘의 지인을 비롯한, 사뮈엘에게만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선택적 공감능력을 지닌 사람들도 그 특별한 불행에 취해서는 산드라를 피도 눈물도 없고 남편이 어떻든 상관 없고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악마 그 자체로 만드는 게임에 참여하는데. 이거 너무 많이 보던 거잖아...

본인의 실패가 자기가 부족해서, 능력이 안 돼서, 그럴 그릇이 못 돼서라는 걸 인정 못 해서 모든 원인을 주변으로 돌려버리고 자기 자신은 피해자라고 정신승리해야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인데... 나는 산드라보다 사뮈엘을 더 주변에 두기 싫다... 정말로... 인간이 너무 어려보여서 무슨 생각까지 들었냐면, 산드라한테 자기 나름의 복수ㅋㅋ를 해보겠다고 자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싸움을 녹음한 것도 그렇고. USB에 남긴 것도 그렇다. 아니 애초에 녹음할 생각이 있었고 녹음을 하고 있는 중에 대화를 그딴식으로 한 거면 산드라가 화내는 걸 유도했다는 건데 아 진짜.ㅋ 아..........아......!!!!!!!!!!!! 개빡쳐!!!!!

 

 

5. 각종 증인과 검사... 그리고 판사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내가 불어 실력이 매우매우 짧아서 아쉬웠는데 잘 하는 사람이 보면 더 재밌었겠다 싶었다. 공부 좀 할 걸... 처음 증인으로 나왔던 대학원생(다른 사람들은 기자라고도 하던데 난 왜 원생이라고 생각했을까? 인터뷰어라고 쓰고싶지 않아서 걍 원생이라고 쓴다.)이 판사에게 마드모아젤이 아니라 공적인, 그러니까 정중하게 대우해달라며 마담을 써달라고 아주 정당한 부탁을 하니까 판사는 좋아요, 마담. 이런식으로 답했던 거 같은데(근데 이것도 달갑진 않은데 정당한 요구니까 떨떠름하게 예; 좋아요, 마담. 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음ㅜ). 검사는 옆에서 그걸 듣고 있더니 자기가 심문할 때 은근슬쩍 마드모아젤이라고 한 다음에 아~ 미안합니다, ✌마담 ✌ . 이런식으로 증인 속을 긁는다. 진짜 너무 졸렬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음. 근데 이런 식의 작은 장치가 이거 하나만 있진 않았을 텐데 나는... 알아차릴 수가 없다고...ㅜ 그게 너무 아쉬웠다.

정말 성실하게 자기 의무를 수행한 사람은 인터뷰하러 온 사람, 그리고 나중에 나온 전문가(어떤 전공인지 모르겠음;)밖에 없었다. 처음 나온 전문가, 상담사, 수사관 모두 자기가 상상하는 소설에 필요한 적절한 악인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 최고봉은 검사였고... 그래서 다니엘의 마지막 증언을 들은 검사의 표정과 대사가 더 화가 났다. 그냥 그정도 였으면서 그렇게까지 더럽게 굴었다니... 검사는 패배를 직감한 순간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패배가 확실하면 포기할 수 있는 정도의 사건이었던 거다. 근데 피고인 측은 패색이 진해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사람의 삶이 도륙당하고 해부 당해서 온 천하에 전시됐는데 검사한테는 본인이 진 사건으로 그냥 끝나겠지. 서류철에 대강 끼워져서는 문서 보관함 어딘가에 처박힌 채로 그렇게 끝날 케이스일텐데. 산드라랑 다니엘에게는 지금까지 삶이 난도질당하고 어쩌면 미래까지 뒤흔들,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싸움이었다고. 그래서 허무하리만치 쉽게 패배를 인정한 검사가 정말 화가 났다.

 

 

6. 변호사에 관해서도 하고싶은 얘기가 많다. 이 영화가 정말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쓸데 없는 애정신이 없어서다. 내가 프랑스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난무하는 애정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영화는 전~혀 그런게 없어서 너무 좋았다. 누가봐도 산드라를 오래 좋아했던게 분명한데도 절대 둘 다 선을 넘지 않는다... 그래 이게 교육을 통해 사회화 된 인간이지ㅜ 하... 인터뷰를 보니 초기 구상에선 둘의 애정신이 있었는데 막판에 작가가 애정신 있는거 너무 촌스러우니까 빼자고 해서 들어낸 거 같던데 진짜...............너무너무너무너무 훌륭한 선택이었다. 애정신 있었음 걍 널리고 널린 촌극같아보였을 듯. 쓰고싶은 얘기 많은데 시간이 늦어서 나중에 추가해야겠다.

 

 

7. 연기 천재 강아지 스눕... 연기로 상도 받았다던데 그럴만 하다. 건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