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ne Idée 일상 독서 영화 기록

 

!!스포일러 주의!!

 

 

 

 

 

 

1. 일반관에서 관람했다. 내가 갔던 지점은 이미 특전이 다 소진된 곳이라 포카는 못 받았다.

관객이 아무 정보 없이 포스터만 보았을 때 예상할 법한 분위기랑 실제 극 중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원래 기본적으로 탱화 자체에서 주는... 뭐라고 해야하지? 적당한 단어로 표현이 안 되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탱화는 앞에 섰을 때 관람자인 나 자신을 순식간에 객체로 만들어버리는, 지리하고도 멸렬한 삶과 존재하는 것 자체에 대해 압도하는 위압감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탱화를 보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곱씹고 앞으로 살 삶에 대해 다짐하는 경험은 나만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포스터가 지옥을 묘사한듯 보이는 탱화다? 이거 사람 정신 쏙 빼놓는 영화겠구나! 하고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 전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2. 원작 소설이 30년도 더 전에 연재한 아주 오래된 장르소설이라는 점은 알고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많은 영화였다. 일단 영화 자체의 밀도가 그리 놉지 않은 편이다. 85분이라는 굉장히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데도 가장 중요한 후반부, 특히 액션 부분에서 좀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사 영화와 비교했을 때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물리 제약이 거의 없어진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특장점을 많이 살리지 못한 느낌이라 아쉬웠다. 이 아쉬움이 가장 크게 느껴졌던 부분은 앞서 말했듯 후반부 액션 장면인데. 이런 전투 장면에서 으레 기대할 법한, 애니메이션에서만 느낄 수 있을 현란한 카메라 워크를 활용한 연출이 나오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비용의 문제로 구상한 연출을 제작 과정에서 덜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쌀보리 게임 하는 걸 무한리필로 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원작을 본 사람에겐 아닐 수도 있겠지만) 뜬금없던 '내가 네 애비다' 장면은 감동 보단 황당함이 더 컸다. 작중에선 아이 캐릭터가 10살로 나오던데. 그러면 자기가 출가하기 위해 교주 밑으로 입양 보낸 덕에 약 10년 동안 아이는 초등학교도 못 가고 동굴에서 교리 외우고 부적 그리고 그 나이 되도록 친구 하나 없이 살게 됐다는 소리다. 본인을 그렇게 만든 친부를 갑자기 피가 섞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애틋해할 수 있나? 아니면 아직 어린 아이라 자기가 인생에서 어떤 기회를 뺏겼는지 인지 못 했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것만 같은 진짜 아버지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아이는 그렇다고 해도 본인이 아버지로서 일말의 책임감이 남아있었다면 자신이 친부라고 밝히지 않는 편이 정서상 더 낫지 않았을까... 아니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부자 설정이 왜 필요했던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극을 더 산만하게 만들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인도에서 왔다는 호법은 대사 한 줄 없이 불만 쏘다가 그대로 사망하는 게 좀 당황스러웠다. 다른 호법도 마찬가지로 줄줄이 죽는데 이 연달은 죽음이 안타깝다거나 아군이 줄줄이 죽어나가니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기보다는... 그냥... 갈 때가 되니 가는 구나... 싶었다. 비슷하게 허허사였나? 희생하는 캐릭터도 있는데 이 인물도 어디서 익히 봐오던 캐릭터 성을 가지고 있어서(평소엔 베짱이 or 허허실실 캐릭터지만 중요한 순간에 진지해지면서 갑자기 희생하는 인물) 그냥... 아... 역시 희생하는 구나~ 하고 넘기게 되었다. 캐릭터의 퇴장이 슬프다거나 마음이 아프기에는 이 인물과 정이 들 새도 없이 가버렸고 더욱이 저런 캐릭터가 희생하는 거 자체가 너무나 클래식이라... 원작 소설이 연재되던 당시에는 클리셰로 굳어지지 않은 시대였을지도 모르겠지만 2025년에 보기에는 충격적인 희생이라기보다는 초반부터 '특정 진행을 위해 넣어진 캐릭터'라는 느낌이 와서 올 게 왔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밖에 강남 대형 교회같은 성당 내부, 미사 때 미사보 쓴 사람이 아무도 없음, 법당에 신발 신고 들어가는 작중 인물들, '네가'를 끝까지 '니가'로 표기한 자막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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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신부 과거 회상 씬에서 '아저씨... 아저씨...'만 외치던 어린 아이를 표현하는 방식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이때는 3D로 구현한 인물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울렁울렁 움직이는 효과를 넣은 그림 몇 점이 나오는데 너무... 아 뭐라고 표현할 말이 생각 안 나는데............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애가 아파서 입원하고, 귀신인지 뭔지에 빙의한 와중에도 속눈썹과 머리 컬 잔뜩 들어간 그림으로 묘사하는데... 이건 뭐 예쁘게 죽어요, 예쁘게 빙의해요도 아니고 뭔가 싶었다. 어린 아이에 뭐가 씌였는데 그걸 너무 잔혹하게 묘사하고 싶지 않았던거라고 선해하고 싶지만... 그럼 그냥 빙의했을 때를 안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닌가? 솔직히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전달 가능한 뻔한 내용이잖는가;; 

 

 

4.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음악이 생각난다. 타악을 잘 활용해서 좋았다. 음악을 제외하면 탱화 미술...이 좋았다. 크레딧 때 조금 보여준 탱화 그림들이 재밌어 기억에 남는다.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다음 편이 나온다면 이 부분을 기대하며 볼 거 같다.